“계란이라고 해요? 달걀이라고 해요?” 무척 느닷없는 질문이었다. 사십오 분의 점심시간 중 삼십 분을 쓰고, 남은 십오 분 동안 회사 옆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보통 듣게 되는 질문이 아니었으니. 습관적으로 주문한 커피를 들이켰고, 내가 시킨 카푸치노가 아니라 아메리카노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, 아무렴 어때- 커피가 다 커피지, 생각하는 평온한 십오 분이었다. 나는 어떻게든 그 평온을 유지해보려고 [...]
¶ 120415
-취미가 뭐예요? -듣고 좋아한 남자가 없었어요. -그게 무슨 말이에요. -제 취미가 무엇인지 듣고 표정에 변화가 없던 남자가 없었다고요. -거 들어나 봅시다. 취미가 뭐예요. -물 끓이는 거예요. -아, 커피? 아니면 허브차? 그것도 아니면, 남자들이 싫어했다는 걸 보니 사발면인가요? -중독이에요. -커피군요. 커피. -아뇨. 아무것도 안 마셔요. -그럼 사발면에 중독… -아뇨. 아무것도 안 먹어요. -아니, 아무것도 안 마시고 [...]
¶ 120224
매해 봄이 되면 영락없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. 봄의 존재들. 하나, 촛불 하나가 일으킨 화재에 고인이 된 여중생이 있었다. 그녀는 철문에 가족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놓았는데, 신비롭게도 그리고 아프게도, 집 전체가 타들어갔을 때마저 그 이름들은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. 나는 그 아이의 사체를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했다.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철문의 글씨를 떠올릴 수 있다. 부디 [...]
¶ 120220
Interview 이석원 2009년 자신을 둘러싼 소음, 소문, 칭찬들, 그 무엇이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얼마나 민감한가요. 글쎄요. 음, 제가 사실 그런 게 있어요. 겁살이라는 게 있거든요. 겁살이요? 네. 겁살이라는 게 무엇이냐면, ‘남에게서 어떤 오해를 받거나 억울한 구설수에 많이 휘말리는 수’를 겁살이라고 한데요. 그런 게 삼십대 초중반까지 있다고, 그런 점괘를 들었던 게 벌써 십년 전이에요. 그런 게 [...]
¶ 120219
Interview 신카이 마코토 2008년 이동한다는 것, 여행한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. 학창시절에는 혼자서도 곧잘 일본 국내를 여행했습니다만, 나이를 먹어갈수록 여행에 흥미가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.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이동하면서 내내 풍경을 본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하던 것들은 못 하겠더군요. 그렇다고 해서 누구와 함께 여행하는 것도 서툴러서, 스물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10년 남짓은 일 목적이 아닌 [...]
¶ 120218
나는 이제 한 부부에 대해 말하려 한다. 중남미 어딘가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도 없거니와 이름조차 모르지만, 나는 분명 그들을 알고 있다. 당신도 이제 곧 그 부부를 알게 될 것이다. 지나치다 싶게 과묵한 부부였다. 보통 한쪽이 과묵하면 다른 한쪽이 수다스럽기 마련인데, 이 두 사람은 절대적으로 서로 말이 없었다. 청혼을 하던 날 역시 남편이 [...]
¶ 120215
Interview 이아립 2009년 인터뷰가 여러 이유로 싫어졌다고 했는데, 어떤 식으로든 오해를 부르기 때문인가요. 시시때때로 변하는 스타일이라, 내가 한 말이 바로 나를 치는 경우가 많아요. 오늘 이런 생각이, 내일 저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서 “이때는 이런 생각이었구나” 받아들이면 그만인데, 인터뷰는 그게 글로 남잖아요. 그래서 싫어하게 되었어요. 누구나 변하고, 나도 물처럼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을 떼어놓았을 [...]
¶ 120215
Interview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2009년 히라노 게이치로 씨에게 연애라는 것은 일상적인 의미에 가깝습니까, 문학적인 의미에 가깝습니까? 연애라는 것은 아주 깊은 곳에서 상대에게 자신이 선택받을지 아닐지,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 받을 수 있을지,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.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지요. 예컨대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여러 면에서 참 못난 남자를 좋아한단 말이죠.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그 여자를 [...]